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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역사를 알아보자

1. 기계식 계산기의 시대

고대 바빌론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하여 땅에 적당한 깊이의 작은 구멍을 몇 개 파고 그 안에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등을 이용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수만큼 담아서 표시했습니다. 또는 염주 알이 쓰이기도 했으며 이후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사용은 되지 않지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주판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주판이 컴퓨터의 효시라 할 수 있으며 주로 동양에서 많이 사용해 온 데이터처리용 기기였습니다. 또한 지금의 컴퓨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 처리를 위해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컴퓨터의 효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동 계산용 기계는 1642년에 프랑스의 파스칼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파스칼은 세금수금원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세금계산서의 긴 항목을 더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후 새로운 기계를 생각한 끝에 파스칼린이라는 계산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계산기는 0에서부터 9까지를 표시할 수 있는 10개의 톱니를 가지고 있으며 톱니바퀴가 회전을 하면서 숫자의 가감산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계산기는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수치 계산의 새로운 전환기를 예고하였습니다.

 

파스칼린 이후로 약 30년 후인 1673년에 라이프니츠가 만든 4칙 연산을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범용 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탁상용 계산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발달되어 오던 컴퓨터는 1800년대에 영국의 찰스 배비지는 자동 완구 인형에서 힌트를 얻어 수식을 처리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는 정부의 지원으로 미분엔진이라는 기계를 설계하였으나 완성하지는 못했고 설계로만 끝났습니다. 배비지는 미분엔진 제작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연구한 결과 해석기관이라고 하는 현재와 거의 흡사한 컴퓨터를 설계하였습니다. 이 장치는 오늘날의 계산기와 비슷한 기억연산, 제어 및 입축력 기능을 갖도록 설계되었으며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재 CPU에 해당하는 즉 산술연산을 담당하는 밀과 현재의 저장 장치에 해당하는 연산용 기억 장치인 스토어, 데이터의 전송과 동작 순서의 제어를 담당하는 제어 장치, 그밖에 카드를 사용한 입출력 장치 등이었으며, 특히 출력은 연판에 의한 인쇄를 생각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계산기는 그 당신의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연산 순서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방법은 오늘날 컴퓨터의 원리와 가장 가까운 구조로 설계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 기계의 개발에는 유명한 시인인 바이런 경의 딸 오거스트 에이다 바이런이 오랜 시간 동안 배비지의 동료로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에이다는 수학자로서 배비지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많은 다른 과학자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에이다는 세계최초의 여성 컴퓨터 과학자라고 할 수 있으며 훗날 그의 이런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의 명칭을 Ada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1790년부터 10년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왔으나 데이터 분류 및 분석에 7년 이상이나 걸려 개선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1887년 여론 조사국에 입사한 홀러리스는 여론조사 데이터 정리 작업이 늦어지는 원인이 주로 데이터의 체계적인 분류와 빠르고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카드 분류기와 회로개폐 장치 및 기계적 계수기로 구성된 펀치 카드시스템을 고안하였고 여론 조사 데이터 정리 작업을 2년 내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홀러리스가 펀치카드 시스템을 개량하여 상품화하려고 회사를 섭립한 것이 테뷸레이팅 머신사입니다. 이 회사는 IBM의 전신인 컴퓨팅 태뷸레이팅 리코딩사가 됩니다.

 

힐러리스의 펀치 카드시스템 발명의 중요성은 데이터의 내용을 펀치카드에 천공함으로써 데이터의 내용이 천공된 구멍의 유무로서 부호의 형태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카드에 천공된 구멍은 정보의 기계내부로 운반하는데 이용되며, 이는 곧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기계내부에서 전기통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료처리의 능률성과 경제성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에는 80 칼럼의 카드와 96 칼럼의 카드가 쓰였으며 주러 80 칼럼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것이 조금씩 변형된 OMR, OCR, MICR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 전자식 계산기의 시대

기계식 계산기는 그 당시의 기술력과 자금부족으로 인하여 상업화에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계산기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으며 국가에서도 컴퓨터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각 국가들이 컴퓨터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도록 자극하였고 주로 포탄의 탄도를 계산하고 각국의 정보를 습득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튜링머신을 제하였습니다. 튜링머신은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연합군의 울트라 계획의 구성원으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하여 릴레이를 사용하여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 해독기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암호해독기는 진공관으로 제작되어 훨씬 빠른 속도로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1973년에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 교수의 하워드 에이 큰 사의 토마스 왓슨의 지원으로 범용적인 전기 기계식 컴퓨터를 설계 및 제작하여 자동순차 제어 계산기라고 불렀으나 후에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실제 이 Mark1은 1944년에 완성되어 사용되었고 이 컴퓨터의 주요 구성은 72개의 톱니바퀴, 3000여 개의 릴레이, 1000마력의 모터를 사용하여 23자리의 10진수 계산을 수초 이내에 할 수 있었습니다. 계산 속도는 곱셈은 3~5초가 걸렸습니다. 연산의 제어는 천공된 종이테이프를 사용하였으며 자동축차 방식으로 처리되는 완전 자동 계산기로서 일반적인 명칭은 Mark1입니다. 이 컴퓨터는 오늘날 컴퓨터의 원조가 되었으며 명령과 데이터를 종이테이프에 천공하여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